Friday, 4 April 2014

군대, 선택이 아닌 의무라면.

술자리에서 하지 말아야 할 주제가 몇가지 있다. 정치, 종교, 남녀 차이, 그리고 군대. 신문을 읽다 군대와 관련된 얘기가 나와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한국에서의 군대는 의무인데, 과연 의무로 복무한 것에 대한 가치가 사회에 존재하는가 의문이다.

한국에서의 군대 문제는 처한 상황이 있어 가벼운 주제는 아니다. 그래서 시작을 위해 이런 질문을 던져본다. 군대는 전시 상황을 대비하여 국가를 유지 하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만약에 전쟁이 일어났다면 (물론 이런 상황을 절대절대 바라지는 않는다.), 군대를 다녀온 남자를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이 있는지 궁금하다.

군대에 대한 말이 나올때면, 여자들은 군대에 안가냐는 말이 나온다. 최근 헌법 재판소에서도 남성들만 군대에 가야 한다는 판결이 나왔다. 이런 기사를 볼 때면, 방향을 한참 잘 못잡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매일 북한의 활동에 대하여 연신 기사를 쏫아내며, 위기 위식을 부추키기만 하지 실질적인 논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군사 전략을 얘기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략은 말 그데로 시나리오, 즉 바라는 바 데로 일어났을 때를 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본질은 이런 것이다.

전쟁이란 큰 재앙이 하루 이틀만에 끝나는 것인가? 그런 역사가 있었던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나 자신도 너무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민방위로 편입 되면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내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는 뭐라 말해야 하는가? 내가 지킬테니 걱정말고 집에서 기다리라고 말하면 될까? 아니면, 전기, 전화, 식수 공급이 다 끈기지만, 전쟁은 수일내로 끝나니 믿고 있어 달라고 말하면 될까?

여기서 논란이 시작된다 본다. 군대를 다녀온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겠다는 것을 알고 사회로 나오게 된다. 하지만, 이와 관련된 지식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어떤 시나리오도 사회에는 없다. 오직 대피뿐. 왜, 군대를 나온 사람들이 사회에 필요한지에 대한 보편적인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군대는 남자들만의 문제일뿐? 이라는 인식만이 존재한다. 노약자에게 총을 쏘는 법을, 진지를 구축하는 법을 교육 시킬 필요는 없다. 여자에게 군대에서 의무 복무를 강요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전쟁이 났을 시를 대비한 인식과 행동에 대한 준비는 필요하다 본다. 

최근 현역 대학생 IT 병특 부활 법안 발의 (http://www.zdnet.co.kr/news/news_view.asp?artice_id=20140404225911)에 대한 기사가 있다. 병역이 싼 인력을 필요로 하는 노동 시장의 대안인가 하는 의문이 들게 하는 기사다. 이미 군복무를 하고 있거나, 군복무를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비수를 박는 법안이다. 먼저 인재를 위한 법안이라는데, 그럼 군복무 하는 사람들은 인재가 아닌가? 그리고 싼 인력이라고 하는데, 이는 군대의 가치를 돈으로 매길려고 하는 어이없는 표현이 아닐 수 없다. 중소 기업에서 채용을 할 때, 그 기업에 지원하지 않는다면 그 기업의 문제인 것이다. 인재가 오게 하는 방법은 다양하게 있다. 주식 지급, 성과급 지급 등 노동에 대한 대가를 주는 방법은 많다. 무조건 싼 가격에 일정 기간 쓰고 버릴 그런 사람을 뽑으려 하다 보니 대안이 필요한 것인데, 이 대안이라 제시된 것이 병역을 피하고 싶은 남자인 것이다. 

한국이 처한 상황상, 전쟁이란 단어를 쉽게 피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기에 기본적인 몇 가지 인식은 같이 했으면 한다. 먼저, 남성의 병역은 대체 수단이 존재하지 않는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군대를 가니 억울하다는 말은 앞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부는 나이 들수록 더 해야 하는 것이지, 20대 초반에 하고 그만 두는 그런 것이 아니다. 정 대안을 찾고 싶으면, 전쟁시에 수행할 수 있는 역할중에 찾아야할 것이다. 정말 공학에 재능이 있다 하면, 국방 연구소에 투입하면 될 일이다. 무리하게 자리를 만들어서 눌러 앉히려는 인사 정책은 지양해야 할 일이다. 여자들은 전쟁시에 어떤 행동과 인식을 갖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 정도는 받도록 하자. 동네에 있는 방공호 위치는 아는지? 단전, 단수, 그리고 음식은 어떻게 조달해야 하는지, 통신망이 마비된 상황에서 어떻게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하는지, 마지막으로 겨울과 같이 혹독한 환경에서 기초적인 생환 장비는 어떤 것이 있는지는 알아야 할 것이다. 전쟁 영화에서 많이 다루고 있지만, 집안에만 있다 적에게 함락되면 정말 비참해질 뿐이다.

사이렌만 울리고 방송만 하는 공치사 말고, 기본 생환 장비에 대한 교육, 극한 상황에 대한 체험 (단전, 단수, 통신 불능에 대한 체험) 등이 필요하다 본다. 불을 끄는 것도 화재 훈련을 받아 본 사람이 잘 할수있다. 이제는 군대 문제를 보다 실효성이 있는 방향으로 풀어나가야 할 때이다.

Saturday, 29 March 2014

캐나다 교육의 장점

캐나다는 교육이 좋기로 잘 알려져 있다. 조기 유학 혹은 인민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캐나다의 어떤 점이 좋으냐고 물으면 이구 동성으로 자연 환경과 교육을 꼽는다. 연일 방송에서는 선진국형 교육에 대해서 보도하고 있으며, 한국은 이렇게 되야 한다고 하는 이상향을 생각하게 한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캐나다 교육의 장점일까?

캐나다 학교 교육의 특징은 교육 과정이 개인과 사회와의 연결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한다는 점이다. 학생과 선생, 선배 그리고 사회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려고 하는 노력을 쉽게 볼 수 있다. 

학생과 선배의 연결 고리는 유치원 과정 부터 시작된다. 사설 보육 시설이 아닌, 초등학교 부속 유치원의 경우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아직은 주변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시기이다. 한국의 경우는 한 교실이 정교사 한명, 보조 교사 1명 ~ 2명인 경우가 많은데, 캐나다에서는 한국에서는 예상치 못한 한 부류가 아이들을 도와준다. 바로 초등학교에 다니는 '선배' 이다. Monitor 란 이름으로 활동하는 이 아이들은 간식 시간, 점심 시간, 그리고 야외 활동 시간에 유치원 교실을 방문해 아이들을 돌본다. 유치원 아이들이 간식으로 싸온 음식을 먹는 것을 돕고, 야외 활동 시간에 아이들간에 생길 수 있는 다툼을 중재하며, 아이들이 아프거나 다쳤을 때 적절한 조치를 취하도록 교육 받은 아이들이다. 한번은 아이가 구토끼가 있고 열이 있어 학교에서 연락이 왔었다. 학교에서 전화가 왔는데, 선생님이 아닌 이 Monitor 에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상황을 설명하고,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리는 모습은 한국에서는 생각하기 힘든 일이다. 또한 혼자 자란 아이들이 갖기 힘든, 동생 혹은 형, 누나로서의 모습을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캐나다에서의 Teacher는 말 그대로, 가르치는 기술을 갖고 있는 전문인이다.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이 아닌, 가르치는 기술을 갖고 있는 전문인이 보다 근접한 정의가 아닐까 싶다. 한국에서의 선생님은 "님" 이라는 호칭을 통해 상하 관계를 만들고, 권위를 부여한다. 그렇기에 지식의 변화에 대한 논쟁이 생길 수도 없고, 맹목적으로 교실안에서의 지식을 강요하게 되며, 소위 말하는 주입식 교육되는 것이다. 지식을 인간 사이의 보편적 협의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교육자들은 보다 많은 지식에 노출된 사람들에게 취약하게 보여질 수도 있고, 또 그런 모습을 비하하는 사람들도 생기게 된다. 한국의 공교육이 무너진다는 지적이 매일 끊이질 않고, 사교육이 활성화 되는 현상은 이 관점의 차이에서 온다고 생각된다. 캐나다의 교육현장은 지식의 회전에 보다 초점을 맞추고 있다. Teacher 는 본인의 지식을 아이들에게 전달하며, 학생들이 갖고 있는 지식과 비교, 분석, 그리고 방향을 제시해 준다. 교과서의 내용에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을 당연시 여기며, 그러한 주제에 대해서는 다양한 관점의 '책' 을 권해준다. 정답이란 없는 것이다. 보다 깊은 지식을 요하면, Teacher 는 그와 관련된 전문 지식을 습득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렇기에 캐나다 수업 시간은 한국에 비해 시끄럽다. 하지만 한가지 정해진 보편적 인식이 있다. 바로, 수업시간은 Teacher 만의 것이고, 그렇기에 모든 대화는 Teacher 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수업이 마치 콘서트 같은 느낌을 갖게 하기도 하는데, 콘서트 같이 많이 말하고 참여할 수록 재미 있어지는 것이다. 아주 사소한 질문, 사적인 질문이라도 Teacher 는 수업을 운영하는 기술을 펼친다. 물론 모든 Teacher 가 이런 현상을 재현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본적인 생각, teaching 에 대한 철학이 한 클라스를 함께 움직이게 한다.

학생들과 사회와의 연결은, 학부모의 자원 봉사를 통해 이루어진다. 캐나다에서는 학부모가 학교에서 자원 봉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아침에 등교를 돕고, 수업 시간 전에 아이들의 수업 준비를 도와 주며, 야외 학습이나 견학을 갈 때는, 아이 3명 정도를 담당하여 돌본다. 수업에 대한 통지문은 선생님이 배포하지만, 기타 학교 전반에 관한 내용은 이 학부모 자원봉사단에서 이뤄 진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다. 한국에서의 학부모 자원 봉사는 학급일을 하는 사람으로, 순번이 있고, 강제성은 없지만 하지 않으면 눈치가 보이는 일인데, 캐나다에서는 자발적으로 학부모들이 참여하고 학교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보기 쉬운 것은, 캐나다의 개인 신분 보증 방식과 구직 활동과 관련이 있다. 가치관의 차이도 있겠지만, 보다 현실적인, 그리고 실질적인 목적이 있는 것이다. 육아에 전념하다 보면, 아이 뒷바라지에 부모 본인의 경력은 단절되게 된다. 한국과 달리 보편적인 북미의 취업 방식은 신뢰성 있는 사람에게 추천을 받는 것이다. 즉, 학교 봉사 활동은 봉사에 대한 개인의 교육에 대한 가치를 증명하는 장소이며, 성실성을 보증하며, 사업 동반자 혹은 구직을 위한 초석이 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주민 등록증으로 개인 증명이 되는 반면에, 캐나다의 신분 보증은 2중, 3중의 장치를 해 놓았다. 구직을 위해서는 필수적인 것인데, Reference check 즉 신원 확인을 신뢰성 있는 사람 즉, 선생님, 매니저, 봉사활동 단체 관리자 등에 문의하여 진행한다는 점이다. 'Catch me if you can' 같은 상황이 벌어지기 쉬운 것인데, 사람들의 신뢰를 잘 얻는다면 어떠한 경력을 시작하는 것이 가능한 곳이 북미일 것이다.

캐나다 교육의 장점을 논할때, 이러한 사회적인 연결에 대하여 먼저 짚어야 할 것이다. 개인과 사회가 소통하는 교육이 캐나다의 공교육이 갖고 있는 의미일 것이다.